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고마워

마누라! 고마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줘서. (미래의 행복보다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

by 하루 감사 2024. 3. 11.

이 이야기는 자기 행복을 찾겠다며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한 어느 철없는 남편의 이야기다. (그 못난 남편은 나다. 못난 녀석 같으니.)

 

 

고마운 아내. 사랑합니다.

우리는 2010년 결혼했다. 벌써 결혼한 지 14년 차다. 아들도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마누라는 출근하고 아들은 등교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나이 40이 넘은 가장이 출근 안 하고 집에 있다. 남들이 보면 집에서 뭐 하냐고 한심하게 볼지 모른다.

 

작년 2월 직장을 퇴사했다. 13년 넘게 설계 업무를 했었다. 그런데 문득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지금 하는 일은 돈 때문에,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 즐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때려치웠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다. 가장으로서 무책임하다고 했다.

 

내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한 분야에서 일하며  살았다. 이제 남은 40년 이상은 다른 일을 해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 읽는 것, 깨달음을 정리하는 것, 새롭게 경험한 일을 기록하는 것, 내가 얻은 정보, 교훈을 글로 작성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가장이 돈을 벌어야지,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면 어쩌냐며 질타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벌써 1년이 되었다. 슬슬 두렵고 불안해진다. 글쓰기를 수익으로 연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못해도 백만 원은 벌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모아 둔 돈은 조금씩 사라지고 돈의 압박이 조금씩 시작된다. 가슴속 열망과 열정은 현실의 압박에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 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아내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아마 아내는 꾸준히 일해 왔던 나에 대한 신뢰, 내가 가진 자격증, 어디든 가면 열심히 할 것이라는 믿음 덕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가 내 결정을 특별히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나를 사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8년 연애, 결혼생활 14년 차로 20년을 넘게 함께 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했다.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 한 남편이 직장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희생한 듯하다. 남편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의 실직이 얼마나 부담되고 불안했을까? 아마 지금은 그 불안이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직장을 얻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조용히 통장 잔고를 보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좋아하는 일하며 살겠다고 어리광 부리고 있는 남편을 이해해 주는 아내가 존경스럽다.

 

전생에 내가 덕을 많이 쌓았을까? 이런 배려심 많고 이해심 많은 아내를 어떻게 얻었을까? 항상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번 달 하던 일을 잘 마무리하고 구직을 할 생각이다. 꿈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꿈을 좇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꿈, 성공, 목표를 이루기 위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하는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는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 계획을 수정한다. 내가 꿈꾸던 미래는 조금 더디게 올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고 직장을 병행하며 조금씩 천천히 목표에 다가가려 한다.